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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표류 중인 한국형 차기 구축함

7조 8천억 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2년째 표류하고 있습니다. 한국 해군의 미래 전력을 책임질 핵심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방위사업청은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두고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의계약이냐, 공동개발이냐. 겉으로는 단순히 조선소 하나를 정하는 문제로 보이지만, 이 결정은 대한민국 해군의 체계, 방산 산업의 권력 지형, 그리고 국가 전략의 방향성을 가르는 중차대한 선택입니다.

11월 결론이 예고된 KDDX 사업자 선정 문제, 그 이면에 숨은 정치와 기술, 그리고 자존심의 전쟁을 살펴보겠습니다.


KDDX란 무엇인가? 한국 해군의 미래를 건 프로젝트

KDDX는 Korea Destroyer eXperimental의 약자로, 한국이 독자적으로 설계·건조하는 차세대 구축함입니다. 한국형 미니 이지스함이자, 향후 한국 해군 전력의 중추가 될 핵심 플랫폼입니다.

프로젝트 규모

  • 총 6척 건조 예정
  • 총 예산 약 7조 8천억 원
  • 국산 전투체계, 스텔스 설계, 수직발사관,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더(MFR) 등 첨단 기술 집약

KDDX의 의의는 단순한 함정 건조를 넘어섭니다. 이 사업은 한국 해군이 미국 이지스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형 해상 전투체계'를 구축하는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업자 선정은 단순한 조선소 계약이 아니라, 누가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를 설계할 주체가 될지를 정하는 결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갈림길에 선 방사청: 수의계약 vs 공동개발

현재 방위사업청은 두 가지 방식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수의계약안: 안정성을 택한다

기본설계를 맡았던 HD현대중공업과 단독 계약하는 방식입니다. 과거 해군 함정 사업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던 절차로,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기본설계 단계에서 이미 기술, 도면, 체계 연동을 모두 설계했기 때문에 같은 업체가 상세설계로 이어가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입니다. 실제로 세종대왕급 이지스함, 대구급 호위함 등도 이런 방식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장점: 기술 연속성, 일정 준수, 책임 소재 명확
단점: 독점 논란, 공정성 시비

공동개발안: 상생을 택한다

기본설계사인 HD현대중공업과 개념설계를 맡았던 한화오션이 함께 참여하는 방안입니다. 두 업체가 상세설계를 공동 수행하고, 1번함과 2번함을 각각 나눠 건조하는 형태입니다.

이 방식의 명분은 '상생'입니다. 한쪽 독점 체계를 막고, 양사 기술력을 결합해 더 나은 결과를 얻자는 취지입니다. 게다가 동시 건조로 전력화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실익도 있습니다.

장점: 형평성 확보, 동시 건조로 일정 단축 가능
단점: 책임 소재 불분명, 설계 충돌 및 공정 지연 위험

문제는 공동개발의 현실성입니다. 한국 방산사에서 공동개발의 성공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결국 방사청은 안정성과 형평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왜 2년이나 결정을 못 내리고 있나?

원래라면 2023년 말에 상세설계와 선도함 발주가 시작됐어야 합니다. 하지만 방사청은 2년 가까이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치적 압박

방위산업은 단순한 기술사업이 아니라 정치, 지역, 고용이 복잡하게 얽힌 거대한 이해관계의 장입니다. '한화와 현대의 상생', '조선업계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은 정치권의 민감한 이슈입니다.

민간위원 반대

방위사업추진위원회 민간위원 중 일부는 "독점 수의계약은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특히 국감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방사청이 특정 업체 편을 든다"는 비판을 제기하면서 결정이 더 늦어졌습니다.

기술 공유를 둘러싼 불신

HD현대중공업은 "우리가 기본설계에서 확보한 기술과 노하우를 타사와 공유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화오션은 "기본설계가 우리의 개념설계를 기반으로 한 만큼 공동 참여는 정당하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사청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후폭풍은 불가피합니다. 수의계약이면 "독점 밀실 계약" 논란, 공동개발이면 "비효율과 책임 전가" 논란이 동시에 터져 나올 것입니다.


진짜 싸움의 핵심: 전투체계 주도권

KDDX 논란의 진짜 핵심은 단순한 함정 제작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전투체계 주도권'이라는 훨씬 더 큰 게임이 숨어 있습니다.

한국 해군이 추진 중인 KDDX 전투체계는 한화시스템이 주도하는 한국형 이지스 체계입니다. 이는 미국의 SPY-1 시스템과는 다른, 완전 국산화된 전장 통합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선체 설계와 체계 통합의 궁합은 완벽히 맞아야 합니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 단계에서 이 시스템을 최적화해 반영해 왔지만, 만약 한화오션이 상세설계에 새로 참여한다면 체계 간 충돌, 배선 재설계, 방진·냉각 구조 수정 등 복잡한 문제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결국 '공동개발'은 기술적 위험을 동반한 정치적 선택이며, '수의계약'은 효율적이지만 독점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KDDX 이후, 한국 방산 생태계는 어떻게 바뀔까?

이 결정은 단순히 조선소 두 곳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방산 생태계 전체의 권력 구조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수의계약 시나리오

HD현대중공업이 단독 추진하게 된다면, 현대는 전투함 분야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KDDX, 차세대 호위함, 심지어 향후 경항모 프로젝트까지 독점 구조가 강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공동개발 시나리오

한화오션은 HD현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2의 주력 조선 방산기업'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이는 조선·방산 업계의 균형 구도를 다시 짜는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이번 결정은 단순히 '누가 KDDX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앞으로 10년간 '한국 해군과 방산 산업의 주도권을 누가 잡을 것인가'를 가르는 분수령입니다.


11월, 대한민국 해군의 향방이 결정된다

11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 그날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KDDX는 대한민국 해군의 운명을 바꿀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HD현대중공업이 단독으로 맡는다면 속도와 효율은 확보되겠지만 '공정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한화오션과의 공동개발로 간다면 정치적 명분은 얻겠지만 일정 지연과 책임 공백은 감수해야 합니다.

결국 방사청이 선택해야 할 것은 '누구에게 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해군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효율과 공정성, 기술과 신뢰, 그리고 전략과 정치. KDDX 사업은 그 모든 교차점 위에 서 있습니다.

11월, 대한민국의 차기 구축함은 단순한 배가 아니라 국가 방위 산업의 향방을 가르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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